마르타 루이사 알티에리, 실험과학의 지평을 넓힌 선구자

 

여성 과학자의 이름이 지워진 역사 속에서

 

과학사의 기록 속에서 여성의 이름은 종종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라틴아메리카의 학계에서 활동한 마르타 루이사 알티에리는 그런 한계를 과감히 넘어선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실험과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오랫동안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알티에리의 학문적 성취와 그가 살아온 여정을 되짚어보면, 단순히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여성 과학자들이 어떤 구조적 장벽을 뚫고 길을 개척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여성 과학자의 도전과 시작

 

알티에리가 과학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는 여성이 대학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힘들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남미 여러 국가는 근대화를 추진하며 유럽 학문을 도입했지만, 여성의 학문 활동은 여전히 ‘예외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알티에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특히 신경생리학과 혈액순환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정밀한 관찰과 데이터 수집을 통해, 특정 신경 자극이 혈류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리학적 사실을 규명하는 차원을 넘어, 임상적으로 혈관 질환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기초 지식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실험과학 방법론의 혁신과 객관성 추구

 

알티에리의 연구가 더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발견의 차원을 넘어 ‘방법론’의 혁신에 있었습니다. 그는 실험의 반복성과 정량적 기록을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당시 일부 의학 연구는 아직도 경험적 관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알티에리는 수치화된 데이터를 통해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는 후대 의학 실험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여성 연구자가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불평등 속에서도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

 

물론 알티에리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성 연구자는 정식 교수 임용이나 연구비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알티에리 역시 독립 연구실을 꾸리지 못한 채 대학 연구소의 보조적 지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과학 실험의 기초를 가르치며,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자존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연구 성과를 넘어, 다음 세대 여성 과학자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학문적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만든 토대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과학사의 새로운 가능성

 

알티에리의 업적은 과학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그는 지리적, 제도적 한계 속에서 국제 학문과의 연결을 시도했고, 동시에 현지의 의학적 문제 해결에도 기여했습니다. 이는 과학이 단순히 서구 중심의 지식 수입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스스로 생산하고 응용하는 지적 자산임을 보여줍니다. 알티에리의 연구는 남미 과학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오늘날 글로벌 과학사 논의 속에서도 재평가할 가치가 큽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

 

오늘날 알티에리의 기록은 일부 학술지 논문과 교육 자료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가 보여준 연구 태도와 학문적 열정은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 축적의 과정이 아니라, 시대적 제약을 넘어서는 도전의 연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알티에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던 학계에서 실험과학의 객관성을 통해 신뢰를 얻고, 후학을 통해 학문적 맥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그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의 본질이 결국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