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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jiansun의 문화유산이야기.

  • 2025. 4. 11.

    by. gmjiansun

    목차

      서원의 길  장성 필암서원

      전라남도 장성의 조용한 들녘, 평탄한 논밭과 야트막한 구릉이 펼쳐진 풍경 속에 한 채의 서원이 고요히 서 있습니다.

      바로 **필암서원(筆巖書院)**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에 등재된 아홉 곳 중 유일하게 호남 지역에 위치한 이 서원은, 조선 유학의 균형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교육 공간입니다.

      오늘날 필암서원은 단순히 유적지를 넘어, 지역의 학문 전통과 선비정신, 그리고 사림이 지켜낸 교육의 뿌리를 생생히 전해주는 장소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호남 유학의 대표 서원, 설립 배경과 사액의 의미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년),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유학자들이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김인후(1510~1560)**를 기리기 위해 창건했습니다.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발전시켰고, ‘하서(河西)’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1594년, 선조가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면서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이후 호남 지역 유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필암’이란 이름은 김인후가 학문에 정진하던 바위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붓이 닿은 바위’**라는 의미에서 그의 학문적 자세와 실천정신을 상징합니다.

      필암서원의 건축미 – 비례와 질서가 살아있는 공간

      필암서원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서원 건축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구조물로 평가받습니다.

      서원의 중심은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며, 그 앞에 자리한 홍살문과 외삼문, 좌우에 동재와 서재, 뒤편에 제향 공간인 문정사가 위치해 유교의 예절 질서를 반영한 전형적인 서원 배치를 보여줍니다.

      특히 문정사는 내부의 기둥 배치와 공포 장식이 정교하며, 하서 김인후와 제자들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는 구조는 다른 서원과 차별화되는 점입니다.

      건물 사이의 간격과 높낮이, 지붕선의 흐름은 모두 사림의 겸손함과 내면 수양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어, 서원의 철학이 곧 건축으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기호학파의 정신, 호남에서 피어나다

      필암서원은 영남 지역 중심의 성리학 흐름과는 결을 달리하는 기호학파의 전통을 대표합니다.

      김인후는 율곡 이이와 연결되는 기호학파의 초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유교의 형식적 측면보다는 도덕성과 실천을 중시하는 유학의 인간 중심적 해석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필암서원의 운영 방식과 제례, 강학에서도 나타나며, 경전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배우는 교육철학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김인후는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정진하고, 사림의 도리를 지키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호남 유학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방문자여권으로 만나는 필암서원

      필암서원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문화유산 방문자여권 ‘서원의 길’ 코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문자여권 소지자는 입구 매표소 혹은 안내소에서 필암서원 전용 스탬프를 받을 수 있으며,

      도산서원, 소수서원, 무성서원 등과 함께 서원 스탬프 투어를 완성하면 기념품과 인증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장성은 다른 서원 밀집 지역과 떨어져 있어 비교적 한적하며, 서원의 고요한 분위기와 철학적 깊이를 오롯이 체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권을 활용한 이 여정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역성과 철학의 만남을 경험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숨은 관람 포인트 – 하서유묵과 장판각

      필암서원 방문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특별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하서유묵(河西遺墨)**과 장판각입니다.

      하서유묵은 김인후가 남긴 서예 작품과 필사본, 주석 등이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서원 내 전시관에서 일부가 일반에 공개됩니다.

      그의 글씨는 정제되면서도 힘이 실린 필체로 평가되며, 학문뿐 아니라 조선 중기 서예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장판각은 김인후의 저작과 유학서적이 목판으로 제작·보관된 공간으로, 전통 인쇄문화의 보존 가치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관람 장소입니다.

      관람 팁과 추천 동선 – 학문의 정원 속을 걷다

      추천 관람 동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주문 → 외삼문 → 명륜당 → 동재·서재 → 문정사 → 장판각 → 유묵전시관 → 뒤뜰 산책길

      전체 관람 시간은 약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이며, 조용한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건물 간의 배치와 흐름을 더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명륜당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감동을 주며,

      장성 일대의 맑은 공기와 어우러져 단순한 서원 관람을 넘어 명상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마무리 – 호남 선비정신의 심장, 필암서원을 거닐다

      필암서원은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아닙니다.

      이곳은 호남 사림이 지켜낸 교육과 정신의 성지이며,

      김인후라는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이 공간으로 녹아든 인문학의 산실입니다.

      문화유산 방문자여권을 손에 쥐고 이곳을 찾는 여정은, 잊힌 가르침을 다시 꺼내어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필암서원의 조용한 기와지붕 아래에서, 우리는 배움이란 무엇이며,

      사람다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방문자 여권 서원의 길 장성 필암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