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jiansun 님의 블로그

과학 비하인드 이야기.

  • 2025. 8. 20.

    by. gmjiansun

    목차

       

       

      남성만이 허락된 의술의 세계

       

      나가노디케가 살았던 기원전 4세기 고대 아테네는 지중해 세계에서도 가장 엄격한 성별 분리 사회 중 하나였습니다. 여성은 법적으로 재산 소유권이 제한되었고, 정치 활동은 물론 전문 교육의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의학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술과 해부학 지식은 오직 남성만이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법적 장벽은 단순히 의학 지식을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 여성의 건강 문제를 남성 중심의 의학 체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산부인과 분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남성 의사 앞에서 몸을 드러내기를 꺼린 여성 환자들이 진료를 피하다가 병이 악화되거나, 출산 중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아가노디케에게 의료와 성별 규제의 부당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녀를 금기를 깨는 길로 이끌었습니다.

       

      남장을 한 의사, 그리고 여성 환자의 신뢰

       

      아가노디케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성 복장을 한 채, 당시 의학 연구의 중심지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고대 지식의 보고로, 해부학과 약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인체 해부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규명한 선구자 헤로필로스(Herophilos) 밑에서 수년간 철저한 의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시신 해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경험은 그녀의 의술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온 아가노디케는 여전히 남자로 위장한 채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그러나 여성 환자들에게만 살짝 자신의 성별을 밝힘으로써, 환자들이 마음을 열고 증상을 솔직하게 말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와 전문성은 곧 입소문이 나, 부유층 여성부터 평민 여성까지 다양한 계층의 환자들이 그녀를 찾았습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여성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의사를 찾아가는 일은 매우 드문 현상이었기에, 아가노디케의 존재는 의료계에 작은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법정에 선 최초의 여성 의사

       

      하지만 아가노디케의 활동은 오래 숨겨질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명성이 커질수록, 남성 의사들의 불만과 의심은 커져갔습니다. 일부 남성 의사들은 환자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비난했고, 심지어 부도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근거 없는 모함까지 퍼뜨렸습니다. 결국 그녀는 ‘불법적으로 의학을 배운 자’라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당시 법정에서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초기에는 오히려 더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여성이 의학 지식을 갖추는 것은 아테네 법에서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환자를 살렸더라도 형벌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아가노디케는 재판 과정에서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술이 단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 환자들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최소한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었다고 변론했습니다. 이 용기 있는 발언은 재판을 방청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법을 바꾸게 만든 용기

       

      아가노디케가 처벌 위기에 놓이자, 그녀의 환자였던 수많은 여성들이 법정을 향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아가노디케가 없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진료를 받겠는가?”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특히 아테네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귀족 여성들이 그녀의 편에 섰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법관들에게 여성 의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고, 의료 제도에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아테네 의회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단행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무죄 판결이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가노디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성별과 직업의 장벽을 논의할 때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 제도의 부당함에 맞서 개인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속 빛나는 사례이며, ‘환자의 신뢰가 곧 최고의 치료’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 의사였습니다.

      다카노 디케, 아테네의 남장 의사